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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고요한 이정표: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

jhinux 2026. 4. 3. 14:42

호반의 도시 춘천은 사계절 내내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며 여행객의 발길을 이끄는 곳입니다. 대개 춘천이라 하면 잔잔한 의암호의 물결이나 세련된 카페 거리, 혹은 활기 넘치는 닭갈비 골목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도시의 번잡함에서 살짝 비껴난 곳에는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버텨온 위대한 유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보물 제76호로 지정된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는 화려한 조명도, 웅장한 전각도 없지만 그 존재 자체로 이곳이 과거 어느 거대한 사찰의 입구였음을 증명하며 도심 속의 기묘한 고요를 자아냅니다.
당간지주라는 이름이 생소한 이들에게 이 구조물은 그저 길쭉한 돌기둥 두 개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불교 예술과 역사적 맥락에서 당간지주가 갖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사찰의 입구에 세워져 당(幢)이라 불리는 깃발을 달아두던 깃대인 당간을 지탱하는 이 돌기둥은, 과거 이곳이 신성한 영역임을 알리는 이정표이자 사찰의 위엄을 상징하는 조형물이었습니다. 현재 춘천 근화동에 홀로 남겨진 이 지주는 주변의 현대적인 건물들과 대조를 이루며 시간을 박제한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이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시대 후기에서 고려 시대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춘천 지역은 불교 문화가 상당히 융성했던 곳으로, 근화동 당간지주가 위치한 일대 역시 거대한 사찰이 자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비록 기록이 소실되어 정확한 사찰의 명칭은 알 수 없으나, 인근에서 발견된 유물들과 당간지주의 규모를 통해 당시 사찰의 규모를 짐작해볼 뿐입니다. 높이 약 3.5미터에 이르는 두 기의 화강암 지주는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 수직적인 긴장감과 동시에 안정적인 비례미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이 당간지주의 가장 큰 특징은 장식을 극도로 절제한 소박함에 있습니다. 보통 통일신라 전성기의 당간지주들이 화려한 문양이나 조각을 가미했던 것과 달리, 근화동 당간지주는 기둥의 모서리를 살짝 다듬어 부드러운 곡선을 살렸을 뿐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히려 시대적인 변화와 지역적 특색을 반영하는 요소로 평가받습니다. 화려함보다는 실용성과 구조적 견고함에 집중했던 당시 석공의 마음이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단단한 화강암 질감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합니다.
기둥의 안쪽 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세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 간공(竿孔)이라 부르는데, 당간을 고정하기 위해 빗장을 끼워 넣었던 흔적입니다. 맨 위와 중간, 그리고 아래에 배치된 이 구멍들은 당시 당간이 얼마나 높고 견고하게 세워졌는지를 가늠케 합니다. 비록 나무나 철로 만들어졌을 당간 자체는 세월의 흐름 속에 썩거나 녹슬어 사라졌지만, 그것을 붙들고 있던 돌기둥만은 모진 풍파를 견디며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를 방문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황혼 무렵입니다. 춘천역 인근의 평지에 자리 잡고 있어 지는 해의 잔광이 돌기둥을 비출 때, 거친 화강암의 표면은 황금빛으로 물들며 더욱 깊은 입체감을 드러냅니다. 이때 당간지주 앞에 서면 마치 현대의 춘천에서 고려의 어느 사찰 입구로 시간을 건너뛴 듯한 묘한 감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주변을 지나는 차 소리와 기차 소리가 멀게만 느껴지고, 오직 돌기둥만이 전하는 침묵의 언어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매거진 에디터로서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단순히 역사적 가치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곳은 춘천의 현대적 관광 코스와 역사적 깊이를 잇는 완벽한 연결 고리이기 때문입니다. 당간지주에서 도보로 조금만 이동하면 춘천의 랜드마크인 소양강 스카이워크와 소양강 처녀 동상에 닿을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 개장한 레고랜드와도 인접해 있어, 아이들과 함께 현대적인 테마파크를 즐기기 전후에 잠시 멈춰 서서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의 기억을 되새겨보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당간지주 주변은 작은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도 적당합니다. 화려한 공원은 아니지만, 주민들의 산책로이자 여행자들의 쉼표가 되어주는 이 공간은 춘천이 지닌 서정적인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벤치에 앉아 지주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름 모를 사찰의 승려들이 당(幢)을 올리며 기원했을 평안과 안녕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가치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예술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근화동 당간지주는 공간의 미학을 극대화하는 존재입니다. 사방이 트인 평지에 우뚝 솟은 두 기둥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도시 풍경에 수직적 변주를 줍니다. 기둥 사이의 빈 공간은 단순히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 과거를 상상하게 만드는 서사적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당간을 상상하고, 그 끝에 매달려 바람에 흩날렸을 오색찬란한 깃발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과정은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이자 유희입니다.
또한 이 유적은 보존과 공존에 대한 화두를 던지기도 합니다.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많은 문화재가 자리를 옮기거나 훼손되는 진통을 겪었지만, 근화동 당간지주는 제자리를 지키며 현대적인 도로망과 주거 시설 사이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했습니다. 이는 춘천이라는 도시가 과거를 어떻게 대우하고 기억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합니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박물관 유리창 너머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생생한 역사의 파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답사를 마친 후에는 인근의 오래된 식당에서 춘천의 맛을 즐기며 여운을 정리해보는 것을 권장합니다. 근화동 일대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갈한 손맛을 자랑하는 백반집들과 노포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당간지주가 보여주었던 소박하고 단단한 아름다움처럼, 과장되지 않은 춘천의 진짜 로컬 감성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는 단순히 '구경하는' 장소가 아니라 '머무는' 장소입니다. 화려한 볼거리에 지친 눈을 식히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를 늦추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보십시오. 거친 돌의 촉감을 눈으로 쫓으며 천년 전의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춘천 여행의 깊이는 한층 더 깊어질 것입니다. 보물 제76호라는 이름표보다 더 소중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위로를 건네는 이 오래된 돌기둥과의 만남 그 자체입니다.
잊혀가는 것들이 주는 아름다움은 때로 화려한 것들보다 더 강렬한 법입니다.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는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춘천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작지만 거대한 유산이 전하는 침묵의 메시지가 닿기를 바랍니다. 호수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처럼 몽환적이면서도, 대지를 딛고 서 있는 화강암처럼 단단한 위로를 얻어갈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근화동 당간지주입니다.

 

 

[이용 정보]

- 운영 시간은 연중무휴 24시간 개방되어 있어 언제든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합니다.

- 이용 요금은 무료이며 누구나 제약 없이 역사적 유산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주차 정보는 별도의 전용 주차장은 마련되어 있지 않으나 인근 공영 주차장이나 도로변 주차 공간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 대중교통 이용 시 경춘선 춘천역 1번 출구에서 도보로 약 10분 내외의 거리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 유의 사항은 소중한 국가 지정 보물인 만큼 시설물을 훼손하거나 기어오르는 행위는 절대 금지됩니다.

- 바로가기: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 https://map.kakao.com/link/search/%EC%B6%98%EC%B2%9C%20%EA%B7%BC%ED%99%94%EB%8F%99%20%EB%8B%B9%EA%B0%84%EC%A7%80%EC%A3%BC
자료 및 사진 출처: 한국관광공사 (TourA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