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탑의 미학,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 신라 석탑의 계보와 일제강점기 수난사를 품은 문화유산
군산의 역사를 논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대 건축물이나 항구의 기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군산 발산리 지역에는 수백 년의 세월을 오롯이 견뎌온 귀한 석조 문화유산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바로 보물 제276호,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을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신라 석탑 양식의 계보를 잇는 이 탑의 깊은 역사와 숨겨진 이야기 속으로 안내하고자 합니다. 이곳은 단순히 오래된 돌탑을 넘어, 일제강점기 한국 문화재 수난사의 아픈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천 년의 미학: 발산리 석탑의 기원과 양식적 특징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은 학계에서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본래 이 탑이 세워졌던 절의 이름은 명확하게 전해지지 않지만, 그 양식적 특징을 통해 신라 석탑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전형적인 신라 석탑 양식의 계승
발산리 오층석탑은 전체적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통일신라 시대의 가장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석탑 양식인데요. 기단부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각 면에는 탱주(버팀 기둥)와 우주(모서리 기둥)를 조각하여 안정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특히, 옥개석(屋蓋石, 지붕돌)의 형태에서 신라 석탑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요. 옥개석 밑면에는 각 층마다 4단의 받침(낙수면과 지붕 몸돌 사이의 지지대)이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처마선은 수평을 유지하다가 양 끝에서 살짝 치켜 올라가는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석탑이 가진 무게감을 덜어내고 경쾌함을 부여하는 신라 석탑 특유의 건축 미학을 보여줍니다.
2. 이형탑(異形塔)으로서의 가치
하지만 이 탑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지역 양식과 시대적 변화가 혼합된 이형적인 모습입니다. 오층석탑이지만, 전체적인 비례감이나 섬세한 조각 기법 등에서 이미 전성기의 완벽한 균형미를 보였던 감은사지 또는 불국사 삼층석탑과는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어요.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탑의 비례입니다. 통일신라 후기로 갈수록 탑신이 기단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발산리 석탑 역시 그러한 과도기적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또한, 탑의 1층 몸돌에는 사방불(四方佛)을 새긴 듯한 흔적이 남아있어, 단순한 장엄을 넘어 종교적 의미를 강조하려 했던 후기 신라 불교 미술의 영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비록 탑신부 일부와 상륜부(相輪部, 탑의 머리 장식)가 소실되어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남아있는 부재만으로도 그 규모와 예술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수난사: 시마타니 금고에 갇힌 역사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이 현재의 위치에 있게 된 배경에는 한국 문화재 수탈의 아픈 역사가 녹아 있습니다. 이 탑은 원래 지금의 군산시 개정면 일대의 절터에 서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 발산리로의 이전 배경
탑이 원래 있던 자리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대농장주인 시마타니 야소야(島谷八束)가 소유한 광대한 농장 부지 내에 포함되었습니다. 시마타니는 이 지역의 문화재들을 자신의 개인적인 소장품처럼 취급했는데, 그는 탑을 원래 있던 절터에서 무단으로 해체하여 자신의 농장 사무실 앞마당으로 옮겨 세우게 했습니다.
이는 단지 장소를 옮기는 행위를 넘어, 문화유산이 가진 종교적, 역사적 가치를 무시하고 개인의 재산처럼 취급했던 일제강점기 문화재 수탈의 상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탑이 옮겨진 곳은 현재의 발산초등학교 근처이며, 해방 이후 탑은 국가의 소유로 환수되어 지금의 보존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2. 석탑과 함께 아픔을 겪은 문화재들
발산리 오층석탑의 수난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 탑과 함께 시마타니가 소장했던 여러 문화재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이 바로 발산리 석불입상(보물 제46호)입니다. 이 석불입상 또한 본래 탑과 같은 절터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시마타니는 이 불상을 아예 일본으로 밀반출하려고 시도했어요. 다행히 해방 후 정부의 노력으로 불상은 되찾아오게 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불상의 머리 부분이 심하게 훼손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또한, 시마타니는 이 일대에서 출토된 다른 귀중한 유물들을 모아두기 위해 자신의 농장에 '금고(倉庫)'를 지었는데, 이 창고는 일명 '시마타니 금고'로 불리며 한국 문화재 수난의 생생한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 현재 이 금고 건물 역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발산리 오층석탑과 함께 우리 역사의 아픈 단면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발산리 오층석탑을 방문하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석탑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수백 년간 지켜온 가치와 일제에 의해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수난의 역사를 동시에 기억하는 의미 있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탑의 디테일을 감상하는 방법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은 현재 도로변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비교적 좋은 편인데요. 방문 시에는 탑의 역사적 깊이를 이해하며 다음의 디테일을 살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1. 기단의 구조와 조각
탑을 둘러싼 하층 기단과 상층 기단의 면석(面石)을 자세히 관찰해보세요. 통일신라 시대의 특징인 우주와 탱주가 어떻게 결합되어 기단을 견고하게 지탱하고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현재 탑의 기단은 보존을 위해 보수된 흔적이 있으나, 초기 부재들의 거대한 스케일에서 오는 웅장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탑신의 체감 비율
5층 탑신이 위로 올라갈수록 너비와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체감(遞減) 비율을 확인해 보세요. 통일신라 전성기 탑들은 안정적인 비례를 유지했지만, 발산리 석탑처럼 후기로 갈수록 층당 높이가 줄어들면서 시각적으로 더 높고 뾰족해 보이는 경향을 띠게 됩니다. 이 체감 비율은 석탑의 연대를 추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3. 지붕돌(옥개석)의 낙수면과 받침
옥개석의 곡선미와 함께 밑면의 받침 수를 세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찰 포인트입니다. 발산리 오층석탑은 전형적인 4단 받침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디테일은 석탑이 어느 시대, 어느 양식을 따랐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건축 문법입니다. 또한, 옥개석의 낙수면(물이 떨어지는 면)의 경사가 후대 탑들에 비해 완만하다는 점도 신라 석탑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발산리 오층석탑은 그 장중하고 고풍스러운 모습 속에 통일신라의 번성기와 더불어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픈 역사의 그림자를 동시에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군산 방문 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이 탑이 전하는 수백 년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살아 숨 쉬는 유물을 통해 가장 생생하게 전달되곤 하니까요.

[이용 정보]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697-1 (발산초등학교 인근)
관람료: 별도 없음 (자유 관람)
주차: 발산초등학교 인근 주차 공간 혹은 주변 갓길 이용 (별도의 넓은 전용 주차장은 없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관람 시간: 상시 개방
특이 사항: 해당 지역은 농촌 지역에 위치해 있어 방문 시 주변 정숙을 유지하고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찾아가는 길:자가용: 서해안고속도로 군산IC에서 약 20~30분 소요됩니다. 내비게이션에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 또는 "발산초등학교"를 검색하면 편리합니다.
대중교통: 군산 시내에서 개정면 방면으로 운행하는 시내버스(예: 61번, 62번 등)를 이용한 후, 발산초등학교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이동해야 합니다. 배차 간격이 길 수 있으므로 시간표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로가기: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 https://map.kakao.com/link/search/%EA%B5%B0%EC%82%B0%20%EB%B0%9C%EC%82%B0%EB%A6%AC%20%EC%98%A4%EC%B8%B5%EC%84%9D%ED%83%91
% 본 포스팅은 한국관광공사 TourAPI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